느리게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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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기
  • 박미련 작가
  • 승인 2024.05.0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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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완료’ 이제부터 기다림의 시간이다. 그것이 내 손에 들어올 때까지 설레는 나날이 이어질 테다. 일찍 오면 빨리 봐서좋고 늦으면 또 오래도록 기다리는 즐거움을 만끽하니 좋다. 뜻밖에 택배가 모호한 지난 시절의 감성을 일깨운다. 옛날에는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기까지 열흘은 족히 걸렸다. 빨라야 열흘이지 함흥차사일 때도 많았다. 편지가 상대에게 도착은 했는지, 받고도 무슨 사정이 있어 답장을 못하는 건 아닌지 애달아 했다. 배달 아저씨의 자전거 소리에 본능적으로 귀를 쫑긋거렸다. 매번 실망하여 돌아서면서도 하마 ‘오늘은’, 하면서 신작로를 향해 긴 목을 빼곤 했다. 생각해 보면 보이지 않아 답답하긴 했으나 일상에 설렘이 실핏줄처럼 깔려 있던 시절이었다. 원하는 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도 좋았다. 멀리서 동생 선물 고르느라 눈과 손이 바쁜 언니, ‘막내가 보고 싶어 내일은 기차를 탈 생각이야.’라고 쓴 오빠의 편지를 상상하는 건 무료한 일상을 더없이 풍요롭게 했다.가끔 상상한 장면이 재현되기도 했다. 어느 날, 학교 갔다가 집에 오니 누런 포장지에 싸인 소포가 대청마루에 놓여 있었다. 받는 이가 나인 것을 확인 하고 나니 가슴이 방망이질을 해대었다. 선물을 감싸고 있는 누런 포장지가 하얀 도화지보다 더 반들거렸다. 조심조심 열어보니 빨간 털모자와 52색 왕자 크레파스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털모자의 부드러운 감촉이 온몸을 감싸고 들었다. 부드러운 언니의 살갗이 내게 닿는것 같았다. 52색이라니, 가지 수만으로도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행복했던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보물 같은 장면이다. 그 시절에는 오고 가는 거리가 멀어 닿기까지 하세월이 걸려도 답장을 받지 못하여 불행하거나 우울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올 것을 알기에 기다리는 시간조차 은근한 즐거움이었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그리움이 되어 더 진한 기쁨을 주었다. 때론 쓰릴 때도 있지만 여러 빛깔로 채색된 모호한 기분에 젖을 수 있는 것은 그 시절이 주는 알진 선물이었다. 막내인 나는 동기간이 많았지만 외롭게 혼자 컸다. 언니 오빠들은 일찌감치 대처로 나가 학교를 다녔다. 직장을 잡으면서는 아예 터전을 옮겨갔다. 어쩌다 내려온다는 소식이 오면 그날부터 버스 정류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해거름이 돼서야 불 밝힌 버스가 개선 장군처럼 등장했고 버스는 그리운 사람들을 돌려주었다. 보고 싶은 이를 선물처럼 데려오는 버스가 고마워 꽁무니에 대고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던 것 같다. 세상은 참으로 빠르게 변해왔다. 보고 싶으면 손바닥만 한기기 하나만 움직이면 된다.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가볍게 그의 일상에 동참할 수 있다. 언제든 그를 내 곁에 불러들일 수 있는 세상이다 보니 미련이니 아련함 따위의 정서와는 점점 멀어져 간다. 닿지 않는 곳이 없으니 기다릴 일도 없게 되면서 기다림이 일상이던 시절의 풍류도 기기의 출현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시절을 좇아 사람들의 성격도 많이 변했다. 볼 수 없는 것을 위해 아껴둘 마음은 없다. 이율배반의 이면이 있다는 것도 알지만 보이지 않는 것까지 헤아리고 싶지 않아서다. 꺼림칙 하지만 무시하고 넘어가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으니 이해는 된다. 다양한 경우의 수를 헤아리다가는 그 자리에서 제자리 걸음만 하게 되니 이것일까 저것일까 고민하는 자체가 소모적이라는 말에 공감하기도한다. 하여 급하고 직설적이고 거칠어졌다. 서성거리거나 뒤돌아보는 사람을 실패자라 말하고 더디 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앞만 보고 달려도 부족한 시간인데 머뭇거릴 새가 없는 것이다. 획일화된 세상, 모두가 목적지가 같은 마라토너 같다. 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은 보이지 않지만, 그에게로 가고 있는 구간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쌓여 조밀하고 단단한 사랑을 만들어 내지 아니한가. 웬만한 바람에는 끄떡도 없는 튼실한 뿌리를 가지게 되는 벅찬 과정이다. 백합도 땅 밑에서 뿌리로 오랜시간 견뎌야 세상에 머리를 내밀 수 있으며, 꽃대에 또 오랫동안 몽우리로 살아야 꽃으로 피어나지 않던가. 단조로운 일상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애초에 세상은 맑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안개에 가려 흐린 날도 많다.
흐린 날에는 아무리 눈을 비벼도 선명한 것이 없다. 맑은 날과 더불어 흐린 날도 세상의 한 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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