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설한 효자·효부가 부르는 ‘사모곡’
상태바
엄동설한 효자·효부가 부르는 ‘사모곡’
  • 천청남국장
  • 승인 2017.01.26 12: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0년간 치매 노모 봉양해온 김문흠·한경임씨 부부

“새해에도 어머니(치매3급 판정)의 건강이 더 악화되지 않고 건강하셨으면 하는 게 저희부부의 소망입니다.”

옥천군 이원면 지탄리에서 나고 자란 효자 김문흠(63)·한경임(55)씨 부부는 30년 세월을 한결같이 노모 봉양을 해온 심중을 이렇게 피력했다.

26년 전, 37세 나이로 늦장가를 간 김 씨는 마음씨 착하고 부지런한 아내를 만나 2남2녀의 복덩이 자식들을 얻고 효를 실천하며 살고 있는 다복한 가장이다.

지적장애를 가진 아내 한 씨는 언제나처럼 한결같은 마음으로 시모(媤母)를 모시고 갖은 수발을 드는 등 어려운 일을 마다않고 효 실천을 해왔다.

“어려운 살림살이 속에서 아이들 키우고 시모를 봉양하는 등 아무리 힘들어도 내색한번 안하는 아내가 너무 고맙다”고 말하는 김 씨는 “처음에는 몰랐는데 오랫동안 살 부비며 살다보니 언제보아도 내 아내는 아름다운 천사표”라고 칭찬하기에 입에 침이 마른다.

김 씨는 “제가 중1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홀몸이 된 어머니는 7남매(큰형80세 작고)를 키워내시고 가정을 일궈가며 대전 등으로 농산물을 팔러다니시는 등 안 해 본 일없이 고생만 하셨다”며 “수십 년간 방안을 뒹굴며 우리를 귀찮게 해도 알 수 없는 바리톤으로 고성을 쳐도 우리 어머니, 밤 12시에 잠도 안자고 식구들을 모두 깨워 밥을 달라고 극성을 부려도 우리 어머니가 너무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제가 전국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알고 산다”는 김 씨는 “아이들이 집에 오면 제가 무척 편해져요. 할머니 수발에서부터 기저귀 갈기, 식사해드리기 등을 싫다고 마다않고 모두 해 준다”며 “제가 보아도 아이들이 너무 착해서 행복하다”고 거듭 말을 이어갔다.

소 20마리, 벼농사, 포도농사(1천여평)로 억척같은 삶을 일궈가는 김 씨는 거무죽죽하고 거칠고 두툼해진 손으로 히죽이 입가를 쓸어내리며 또 한 번 자식자랑, 아내자랑, 어머니자랑을 쏟아내어 놓는다.

김 씨는 “우리 집은 어머니 생신에서부터 아내, 아이들 할 것 없이 옥천에 소재한 ‘하얀풍차’ 빵집에서 수십 년 간 무슨 일 이 있어도 케이크를 사다 축하를 해주는 것이 전통이 됐다”며 “으레 아이들은 생일 케이크를 받는 것에 익숙해 있어 수십 년간의 왕 단골이 됐다”고 밝혔다.

“어머니가 덜 아프셨을 당시에는 지금 우리 집 마당에 서있는 봉고차를 타고 삼천포부터 시작해 전국 어디어디 안 가본 데가 없을 만큼 7식구를 태우고 돌아다녔어요. 누워있는 어머니를 위해 한 일이지요. 오랫동안 누워 있으면 건강에 문제가 올 수 있어 치료받던 병원에서 제안한 것이었어요. 한번은 길을 몰라 경찰에 걸렸는데 화물차 앞 뒤 칸에 빼곡이 7식구가 나눠 탄 것을 보고 웃으며 조심하라고 일러주더군요.”

김 씨는 “2남2녀 중 큰 아들(지적장애)은 복지관에 다니고 있고, 둘째딸, 셋째딸(어린이집교사), 막내아들은 고3으로 3남매는 내리 연년생을 낳아 분유통이 거짓말 보태지 않고 창고에 가득해 고물상에 갖다 줄 정도였다”라며 “아이들 키울 때는 살림이 그렇게 넉넉지는 않았지만 기저귀고 분유고 모자라서 굶는 일이 없도록 열심히 일을 했다”고 가장다운 소회를 내비쳤다.

“시모를 모시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였냐”라고 아무리 재촉을 해 물어도 “그런 일 없다”며 손사래 치는 아내 한 씨는 그저 가만히 눈가에 웃음만이 맺힐 뿐이다.

“이 사람은 결코 싫다고 말하지 않아요”라며 금새 대변인이 된 김 씨는 “어머니 똥오줌 가려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바닥에 밥을 다 흘려도 뭐라 않고 다 받아 치우고 집안일 하며 소도 돌보아 주고 하는 아내에게 오직 ‘고맙다’라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고 미소 짓는다.

“언제 효자상을 탔느냐”는 질문에 그저 허허로이 웃음을 짓는 김 씨는 “아마 3~4년 전 쯤 될 거예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요. 다른 사람들하고 상은 다르지만 함께 군에서 효자상을 받은 기억이 있다”고 밝혔다.

김 씨는 “우리가 다 같이 나이를 먹으면 같은 길을 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엄마에게도 항상 ‘몸을 건강하게 잘 돌보아야 한다’는 말을 수시로 합니다. 어머니를 보며 느끼는 것이지요. 아이들에게도 ‘내가 몸이 아프면 난 요양원에 보내 달라’고 말을 한다”며 “늙어가는 것은 우리의 자화상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어 그렇게 말한다”고 말했다.

영동요양학원에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김 씨는 “나도 늙으면 저렇게 될 것인데 짜증이 나다가도 다 사라 진다”며 “요즘은 툭하면 부모들을 요양원에 보내는 것이 하나의 풍속이 돼가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해진다”며 혀를 끌끌 찼다.

“그래서 저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요즘은 아이엄마에게 몸이 아프면 서로가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자꾸 강조하며 살고 있어요. 그래서 몸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을 하지요.”

종교를 묻는 것에 대해 김 씨는 “저는 불교를 믿고 아이들은 교회를 다니더라구요. 그러나 모두 착한 아이들이라 감사하고 고맙다는 생각만 든다”며 “할머니에게 잘하고 엄마에게도 잘하고 두 딸들은 방학 때 집에 오면 언제나 하우스 위에 올라가 끈 매는 일까지 도맡아 하려 하는 일등 아이들”이라고 자랑한다.

김 씨는 또 “집안 살림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한 번도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는데 둘째딸이 대학을 다니며 장학금을 탔고 2년제를 나온 둘째 딸도 고3때 군에서 장학금을 받아와 놀란 적이 있다”며 “아이들이 돈 안 드는 학교에 간다고 고등학교도 사립학교는 절대 안가다고 해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부모와 살기 싫어하고, 부모가 아프면 무조건 요양원에 보내는 작금의 세태에 대해 질책하며 어머니 세대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곧 나의 인생의 한 부분이라며 말을 맺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