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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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은주 시인
  • 승인 2019.01.0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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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시인

회의나 업무 때문에 다른 사무실에 가면 차를 대접해준다. 어떤 차를 원하는지 물어오면 물 한 잔만 달라고 할 때도 있고, 녹차나 둥글레차 등 하나를 고른다. 그런데 무조건 믹스 커피를 타주는 사람이 있다. 나는 속이 쓰려서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데 다른 차를 달라고 해도 “사무실에서 마시는 믹스커피가 제일이죠.”라고 대꾸한다. 맛있게 타는 비결을 안다면서 자꾸 권하는데 좋은 마음에서 주는 것이니 싫다고 하기도 난처해서 억지로 마신다. 식사를 할 때도 자신이 고기를 좋아하면 당연히 다른 사람도 고기를 좋아한다고 단정 짓는다. 나는 야채가 좋다고 해도 “풀만 먹으면 영양이 부족하죠.”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일하다 보면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세상을 사는 기준이 자기 자신인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을 마음대로 하지 못해 안달하고, 왜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니 생각과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는데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간과하고 자신만 옳다고 한다.

생각이 믿음이 되고 믿음이 그의 내면세계에서 진실이 된다. 자신의 믿음에 갇혀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잘못이라고 단정 짓는다. 가족이나 직장, 주위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윽박지르고, 때로는 회유하다가 협박하기도 한다. 이러이러한 공부를 하라거나 어떤 자격증을 따야 한다면서 취업을 위한 목록을 만들어 딸을 데리고 학원에 찾아가는 엄마도 보았다. 딸이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도 아니고 대학생이었는데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얼마나 재미없을까. 아무런 발전도 없고 흥미도 없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무미건조한 생활을 견디는 것이 지옥보다 괴로울지 모른다. 서로 생각이 다르고, 상처가 다르기 때문에 더 많이 공감하는 능력이 생긴다. 다른 사람에게 귀 기울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미 다 안다면 구태여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렇게 자신에 찬 태도가 일할 때 추진력이 될 수도 있고 행동에 옮기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현실성 없는 생각도 옳다고 믿는데 있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그럴듯해 보이면 생각에 생각만 거듭한다. 현장조사도 없고 현실분석이나 선행연구도 없이 오로지 생각에 사로잡혔다가 그것이 정말 이상적인 것이라 믿어버린다. 왜곡된 믿음은 확신이 되어 누가 다른 의견을 말하면 용납하지 않는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이상이 아니라 허상이고 망상일 뿐이다.

심사숙고(深思熟考)라는 말도 신중을 기해 살펴보고 관찰하고 깊이 헤아린다는 것이지 그저 생각만 거듭한다는 것이 아니다. 바늘구멍을 오랜 시간 계속 노려보면 구멍이 점차 크게 보인다. 거기에만 집중해서 바라보니 구멍만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구멍이 커 보여도 결코 들어가지 못한다. 계속 생각하고 믿으면 그것이 가능하다고 착각하기에 이른다.

요즘 트렌드에 맞는 사업 아이템이 있다면서 해보라고 부추기면 처음엔 웃어넘기다가도 계속 듣다보면 진짜 대박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일단 그런 생각이 들면 내게 유리한 쪽으로 계산하기 시작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장밋빛 이야기를 쫓아 시선을 좁히니 아무리 봐도 될 것 같은 확신으로 바뀐다. 부모의 집과 논과 밭을 담보로 크게 일을 벌인다. 대박날 것이라는 확신이 자리 잡았으니 무조건 크게 벌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잘 된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내 생각에 갇혀있는 것,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 그런 사슬들이 쌓여 거대한 족쇄를 만든다. 이 족쇄에서 내가 ‘갑’이니 이 정도는 당연하지 하는 생각도 나오고, 아랫사람들은 도대체 하는 일이 없어 라는 말도 나온다. 성장과정대로 잘 자라는 아이에게 ‘내 말’을 안 듣는다고 야단치기도 한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 우리는 안 그랬는데 라는 말도 그렇다. 쉽지 않겠지만 이 족쇄를 벗고 더 넓게 사람을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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